생활건강
“입을 옷이 없네” 잘못된 쇼핑 습관, 지갑뿐 아니라 건강도 위협한다
최소라 인턴기자
입력 2025/06/05 16:59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무분별하게 구매하는 습관은 지갑뿐 아니라 환경과 건강에도 좋지 않아 주의해야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지난달 29일 환경부가 섬유·의류업체, 재활용업체 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의류 환경 협의체’를 발족한다고 밝혔다. 의류 환경 협의체는 의류 관련 업체와 기관 20여 곳이 모여 우리나라 의류 산업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의류 대량 생산 및 소비로 인한 환경적 피해가 크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의류 과잉 생산으로 인한 환경적 피해가 심각하다. 유엔(UN) 산하 ‘지속 가능한 의류 연합’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10%가 의류 산업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2030년에는 온실가스가 약 12억 43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의류 폐기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이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주식시장에 상장된 71개 의류업체가 지난 5년간 배출한 폐섬유류는 총 214만 2057톤에 달한다. 또 국내 폐기물 통계에 집계된 2023년 한 해 동안 배출된 폐의류는 11만 938톤으로 2019년보다 약 두 배 정도 늘었다.
◇옷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 건강 위협
더 큰 문제는 폐의류 양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생산되는 의류의 약 70%가 합성 섬유라는 점이다. 폴리에스터, 아크릴, 나일론 등의 합성 섬유는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어 의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보다 더 많은 화석 연료가 필요하고 재활용도 어렵다. 또한, 옷을 입고 세탁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된다. 스웨덴 가전제품 제조사 일렉트로룩스에 따르면 옷 1kg을 세탁기에 10분간 돌리면 평균 10~15mg의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될 정도다.
합성 섬유에서 배출된 미세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거나 대기 중으로 흩어져 뇌나 장, 호흡기 등의 인체로 유입되는데 이로 인해 다양한 건강 문제가 발생한다. 환경 과학과 기술(Environmental Science&Technology)에 실린 한 논문에 따르면 미세플라스틱은 불임·대장암·폐 기능 저하·만성 폐 염증을 유발한다. 환경 연구(Environmental Research)에 실린 또 다른 연구 역시 미세플라스틱 섭취가 장 누수를 유발하고 염증성 장 질환을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세플라스틱은 면역 체계 이상, 호르몬 불균형,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소화 장애, 암 등의 건강 문제를 초래한다.
◇“슬로우 패션, 한국엔 아직 정착 어려워”
의류 과잉 생산 및 소비가 초래하는 다양한 문제에 유럽에서는 의류 생산 및 소비 속도를 늦추는 ‘슬로우 패션(slow fashion)’이 유행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얽매이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수하거나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고품질 의류를 선택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정책적 노력도 이러한 유행 확산을 부추겼다. EU는 현재 재고품 폐기 금지 정책이나 친환경 디자인 규정,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 등을 활용해 회원국 내 생산 및 수입 의류를 관리한다. 슬로우 패션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정부 차원에서 무분별한 소비문화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다만, 이 문화가 한국에 정착하기는 아직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소비문화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양대 의류학과 백은수 교수는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Y2K, 미니멀, 테크웨어 등 특정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빠르게 그 흐름을 따라가는 ‘스타일 캐치업 문화’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며 “이러한 환경에서는 슬로우 패션이 단지 ‘좋은 가치’라는 이유만으로 확산되기는 어렵고, 오히려 트렌드로서 포장되지 않으면 시장에 뿌리내리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서울대 의류학과 이수현 교수 역시 “유럽에서의 슬로우 패션 바람은 지속 가능한 섬유패션산업을 위한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도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공동체의식이 있으면서도 개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고, 온라인이나 물류 등의 유통 시스템이 잘 발달돼 있다 보니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접근성이 더 좋아 슬로우 패션 유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느린 소비, 강요 아닌 ‘문화적 코드’로 만들어야
점진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소비자 인식 전환 ▲정책적 유인 ▲기업 전략 변경을 통해서다. 백은수 교수는 “오늘날 소비자에게 있어 진정한 럭셔리는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취향과 경험을 아는 것”이라며 “슬로우 패션이 단순히 당위적으로 인식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는 문화적 코드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했다. 백 교수는 이어 ‘OLO 릴레이 마켓(코로롱의 자체 리세일 플랫폼)’이나 ‘보니벨로(프리미엄 키즈웨어 리세일 플랫폼)’를 예로 들며 “슬로우 패션을 실천하는 중소 브랜드나 로컬 생산 시스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리페어, 리세일 인프라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인식 전환과 정책적 유인이 이뤄지면 기업 전략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백 교수에 따르면 ‘가치 있는 소비’가 ‘세련된 소비’로 인식될수록 기업 입장에서도 스타일과 윤리적 측면을 모두 갖춘 브랜드 서사를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당장 소비 문화를 바꿀 수 없다면 합성 섬유 일부를 친환경적인 소재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합성 섬유의 대체제로는 ▲해조류나 커피 찌꺼기, 파인애플잎 등의 바이오 소재를 활용한 ‘리젠(Regen) 섬유’ ▲생분해할 수 있는 ‘천연 셀룰로오스 계열 소재’ ▲울이나 캐시미어, 실크 등 기존 천연섬유를 다양한 기능성 섬유와 혼합해 활용하는 ‘기능성 천연섬유 블렌딩’ 등이 언급된다.
기사 출처: https://m.health.chosun.com/svc/news_view.html?contid=2025060502758